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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OUR PRIDE GWANGJU FC

[2014시즌 결산②] 악착같이 따라붙던 대행 꼬리표, 악착같은 승격 이룬 남기일
관리자 2014-12-16view   15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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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광주 FC의 1년 항해가 종료됐다. 결과적으로 광주는 승격이라는 도착지에 무사히 안착했다. 여러 장애물과 함께 숱한 위기의 연속이었지만, 광주 선수단 전원을 비롯해 코칭 스태프와 광주 팬, 광주 시민 모두 하나 됐다. 지난 2012년 강등의 아픔과 2013년 K리그 챌린지 첫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K리그 클래식 승격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똘똘 뭉쳐 시즌 마지막에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광주가 클래식으로 승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이는 바로 광주의 지휘봉을 잡은 남기일 감독대행이다. 남기일 감독대행은 자신의 축구 철학을 광주에서 펼쳐내며 ‘형님 리더십’을 발휘했다. 1974년생의 젊은 나이답게 화끈한 공격 축구와 과감한 승부수로 2014시즌 챌린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주인공이 됐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감독대행으로서 이뤄낸 성과라는 점이다. 지난 2013년 여름부터 약 1년 반 동안 대행이란 꼬리표가 악착같이 따라붙었지만, 선수들과 함께 악착같은 승격의 목표를 이뤘다.


퇴진운동까지 벌어졌던 아픔, 믿음으로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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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3년 8월 광주의 사령탑을 맡고 있던 여범규 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했다.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당시 수석코치를 맡고 있던 남기일 감독대행이었다. 남 감독대행은 처져있던 팀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리며 자신만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시즌 본격적으로 동계 전지훈련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한 시즌 준비에 나섰다. 


광주의 파격적인 이적시장 행보에 많은 이들의 기대가 커졌고, 남 감독대행에게 거는 기대 또한 컸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광주의 성적은 부진했고 순위는 하위권을 맴돌았다. 공을 소유만 하고 공격의 마침표를 찍지 못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결국, 광주 팬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고 남 감독대행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답답한 건 선수들과 남 감독대행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상대를 압도하는 공 점유로 주도권을 잡고 일방적인 공세를 취했지만, 단 한 방에 경기 스코어가 뒤집어지는 경기가 많았다.


당시 남 감독대행은 선수단 분위기는 괜찮았다고 밝힌 바 있다.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는 성적 탓에 심리적인 어려움과 맞닿았다. 퇴진운동까지 벌어지는 상황을 알고 있던 남 감독대행은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당연히 욕먹을 것이 있다면 욕을 먹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거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을 것이고 꼭 반전을 이룰 것이다”라는 말로 아픔을 숨기고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남 감독대행은 선수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평소 장난이 없던 그는 선수들에게 농담을 치며 자신을 변화해 갔다. 또한, 잘못한 것이 있으면 강한 질책을 통해 경각심을 갖게 했다. 이 모든 것이 광주 선수단 모두가 하나 되기 위한 바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시즌 초 일본 동계 훈련을 떠가기 전 남 감독대행이 가장 강조한 것이 있었다. 바로 ‘One Team’이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죽어 있는 팀이기에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모두가 하나 되면 단단한 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결국, 남 감독대행의 자신감은 통했다. 처음에는 선수들의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남 감독대행은 자신의 축구 철학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그것을 승격이란 결과로 이끌었다.


‘남기일표 공격 축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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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남기일 감독이 추구했던 축구는 무엇이었을까? 단순 명료하다. 바로 공격 축구다. 하지만 그 안에 무수한 전술과 전략이 숨어있다. 사실, 공격 축구는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공격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 여러 부류의 다양한 공격 패턴이 존재하는데 남 감독대행은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펼쳐가는 빌드업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수비수부터 시작되는 공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남기일표 공격 축구’의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포백 수비의 양쪽 측면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이 중요했다. 오른쪽엔 이종민과 박진옥, 왼쪽엔 이완과 정호정이 배치되며 빌드업 과정에 가담했다. 네 선수 모두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광주의 측면 공격을 이끈 주역들이다. 그만큼 남 감독대행은 노련한 선수들을 중요한 곳에 배치해 자신의 공격 축구를 만들어갔다.


또한, 플레이메이커 임선영을 중심으로 측면까지 연결되는 공격 과정과 이대일 패스를 통한 중앙 돌파 등 공격의 변화 폭도 커 상대 수비의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광주는 이 점을 노렸다. 또 하나 핵심적인 요소는 적극적인 수비였다. 수비를 통해 최고의 공격을 만들었다. 공격 축구에 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수비다. 전방부터 강한 압박을 통해 상대의 흐름을 빼앗았고 빠른 역습으로 주도권을 잡았다.


상대가 누구든 남 감독대행만의 축구는 계속됐다. 선수들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남 감독대행의 축구 방향을 파악하며 제대로 된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기일표 공격 축구’는 광주의 축구가 됐다.


“축구 중심지를 광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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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들에게 광주 축구가 변방에서 중심지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보여주자고 이야기했다.”


지난 경남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가 3-1 승리로 종료된 뒤, 남 감독대행이 가장 먼저 꺼낸 한마디다. 한 시즌 간 무관심에 가깝게 팬들과 멀어졌던 광주 축구는 이번 플레이오프를 통해서 무언의 시위를 했다. 지난 2012년 강등의 아픔을 겪은 뒤 대부분의 팬은 경기장에서 떠나갔고, 시즌 내내 선수들은 텅 빈 관중석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랬기에 선수들은 승격에 대해 더 간절했고 열망했다. 경기장을 꾸준히 찾아온 팬들을 위해, 광주 축구의 부활을 위해서 말이다.


남 감독대행도 선수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광주 축구를 부활시키고 싶은 마음이 그 누구보다 컸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축구 철학을 끝까지 고수하며 밀어붙였고 선수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이며 하나로 융화됐다. 


감독대행이란 꼬리표가 시즌 내내 달라붙어 심리적 어려움도 있었음이 분명했다. 감독으로 승격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며 물거품이 됐고 그래도 남 감독대행은 감독대행이라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독대행으로서 감독과 똑같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 만족해했다. 그는 보여주기 식 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힘쓴, 광주가 진짜 필요했던 감독이었다.


이제 곧 남기일 감독대행은 대행 꼬리표를 뗄 가능성이 높다. 1년 반 동안 따라다녔던 대행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남 감독대행은 크게 연연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의 목표는 이제 더 확실하다. 광주 축구가 축구 중심지로 이동되는 것이다.


글 = 더스포츠 허회원

* 이 기사는 더스포츠(http://www.thesports.cc)와 광주FC(http://www.gwangjufc.com)에 동시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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